
별점 리뷰
여자는 말만 나오면 위자료 아까워서 이혼 안해주는거지! 를 귀가 따갑게 외쳐왔고 저도 지칠대로 지쳐서 제가 줄수있는 최선을 다해서 협의한 끝에 부동산 3채와 아이를 위해 모아둔 학자금을 주는것으로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주일도 안되서 협의된 이혼 문서라며 서류를 내밀었고 아이를 보딩 스쿨에 보내야 하니 빨리 서류에 서명해서 달라며 독촉을 했고 제가 다른 내용이 추가 된 것이 있다고 문자를 보내니 저와 협의된 내용만 있다는 확인 문자까지 보내며 서명을 요구했습니다. (금요일에 서류 주고 이어지는 월요일에 찾으러 오겠다고...)
여자에게 받은 합의문을 선임한 변호사와 읽어가는 중에, 여자가 준비한 문서에는 어마어마한 양육비, 생활비들이 추가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변호사 왈, 현재 저의 수입을 근간으로 볼때 이대로는 지키기가 어려울거 같다면서 이 서류에 서명을 하고 이행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때 최악의 경우는 구속까지도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변호사는 서류에 절대 사인해서는 안된다는 조언을 했고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원하고 어차피 나는 평생을 일해왔고 앞으로도 일할 사람이니 원하면 주자! 그러나 줄때 주더라도 내 자식인지 확인이나 한번 해보고 주자!는 단순한 생각, 그러나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가 집에 왔을 때 입안에 큐팁을 넣어 유전자 체취를 하고 랩에 보낸 후 결과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친자일 확률이 0%! 친자가 아니었습니다.
너무 떨리고 억울하고 분해서 감정을 진정시키려 2틀을 기다렸다가 여자를 찾아갔습니다. 1층에는 수련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2층으로 올라가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방해하지 않으려 최대한 감정을 누르며 여자에게 18년동안 나한테 죄 지은거 없냐고 물었습니다.
여자는 당황하더니 한참 후에 있어! 라고 대답했고 그게 뭐냐 되 물으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 아빠가 누구냐 물었습니다. 여자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참후에 '당신이잖아!' 하며 저라고 하더군요! 유전자 결과 종이를 보이며 '이래도 내 아이라고 할 수 있어?' 울음섞인 목소리로 물으니 여자가 그러더군요! '그럼 이제와서 어떻게?' 하며 저를 쳐다봅니다. 미안해 라는 말 한마디 없이 용서를 구하는 어떤 액션조차 없이 나중엔 '당신 아들이야~' 라고 까지 합니다. 저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말고 친자 확인서 아래, '이 아이는 한영현의 아들이 아닌게 맞습니다.' 쓰고 서명하라고 했지만 여자는 끝까지 그 말은 쓰지 않았고 서명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자는 이제 어떻게 할거냐 물어서 대답했습니다.
당신에게 줄 위자료는 없고 아이의 이름으로 적립한 학자금만 받고 이혼 서류 준비할거다! 동의하냐 물었습니다. 여자는 조용히 어! 라고 대답했고 그 말을 믿고 저는 수련원집에서 나왔습니다.
변호사에게 협의된 사항을 이야기하고 그러나 당분간이라도 살아야 하니 위자료 5만불을 주는것으로 서류를 준비달라 부탁해서 받은 서류를 들고 여자에게 연락했습니다.
여자는 법대로 하라고 하면서 제가 금요일에 찾아가서 협박을 해서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동의한것이고 경찰까지 불러야 했던 상황인걸 모르냐며 없던 말까지 만들어서 저를 싸이코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은 제가 바보라고! 위자료뿐만이 아니라 학자금도 아이의 양육비도 대학 졸업할때까지 계산해서 요구할것이며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일방적으로 말하고 전화도 끊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악해도 이떻게 이렇게까지 악할 수 있나요?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를 제 자식인양 속여 아빠짓을 하게 하면서 그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며 저를 바라봤을까요?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희롱하고 우롱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아이의 생명을 가지고 말입니다.
친부가 있는데 왜 제가 그 아이의 양육비를 책임져야 하죠? 이렇게 한 평생을 속고 사기당해 살았는데 왜 제가 그 여자에게 위자료를 줘야하죠?
여러분의 아들이 저와 같은 처지에 놓였을때 과연 위자료와 양육비 다 챙겨줘라 하시겠습니까? 저희 어머님은 이 충격으로 앓아 누우셨습니다. 무릅을 꿇고 사죄를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닐텐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악하고 독할 수 있는지 원통하기만 합니다.
수련원에도 엄연한 규칙과 법규가 있을줄 압니다.
회원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해결이라든가 감부급으로 일하는 자의 온당치 못한 행위에 따른 처벌에 대한 규제가 있을겁니다.
여자에 대한 (또한 제 고발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인과 함께 - 증거자료 있음) 수련원 자체적인 재판과 처벌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래야 수련원을 빙자하며 앞에서는 천사가 따로없고 뒤에서는 악마의 얼굴을 한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부터 수련원이 자유로울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일의 진위와 함께 수련원의 대처도 알릴 수 있는 한 껏 알리려고 합니다.
자기를 비우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수련원의 모토에 따라 사기꾼을 편들어주진 않으실줄로 믿습니다.
답답하고 억욱한 심정에 수련원의 도움을 받으려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롱아일랜드 수련원, 집 주인으로 있는 김성현 (본명 김성희)라는 여자를 아실겁니다.
저는 그 여자의 남편으로 되어 있는 한영현입니다.
그 여자는 19년간의 결혼 생활 중 남편과 한 집에 산 적은 단 3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결혼 생활 2년만에 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는 태어남과 동시에 알수없는 병에 걸려 온갖 치료를 동원하여 힘겨운 고비를 넘겨 지금은 건강한 15살의 소년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은지 1년만에 알수없는 남자로부터 여자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전화 엔서링 머신에 녹음이 되어 있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집요하고 신경질적으로 사소한 일에 시비를 걸며 싸움을 유발했고 언제나 마지막엔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어린 아이를 생각할 때 이혼은 절대 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여자는 아이와 버지니아에서 살겠다며 이사를 요구했고 저는 집까지 구입해서 그 곳에 머물며 수련원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줬습니다.
여자가 버지니아로 간 후, 저는 2주에 한 번씩 주말마다 네, 다섯시간을 운전해서 버지니아로 내려가 아이를 만나곤 했습니다. 주말에만 만나니 여자와 싸울일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평화롭던 어느날, 아이는 제게 삼촌이 매일 집에 와서 놀아주고 내 침대에서 같이 놀다가 엄마랑 자고 간다는 충격적인 말과 엄마가 아빠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까지 전하더군요!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변명이라도 해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여자는 끝까지 아무말을 하지 않았고 잠잠했던 이혼을 요구하더니 바로 저희 어머니에게 연락해서 '저희 이혼해요! 그렇게 아세요!' 하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습니다. 저는 제발 아니라는 말 한마디만 해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만 여자는 당신 마음대로 생각하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 날 저는 아이를 안고 한참을 울다가 4시간을 운전해서 돌아오는길에 결혼 전 사람들에게 전해 들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저희는 결혼을 전제로 6년의 교제 시간이 있었는데 그 여자의 측근으로 부터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말이 맘에는 좋지 않았으나 책임질일을 한 후라서 들은 이야기 조차 여자에게 확인하지 않았고 흔들림없이 여자에 대한 예의와 의리를 지켰고 지켜왔습니다.
여자의 친정, 그리고 시댁 사이에서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건 일일이 말하고 싶지 않네요! 대체 왜 그 여자와 집안에 저와 제 어머니가 왜 그리 지나칠 정도로 배려를 하며 잘해줬는지 후회가 될 뿐입니다.
여자는 남편이 있는 아내의 삶을 살지 않았고 저 또한 아내가 있는 남자로 살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해주는 밥한번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고 속옷이나 겉옷을 챙겨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여자는 때마다 수련원을 빌미로 LA로 한국으로 수련을 간다 하며 일하는 제게 어린 아이를 맡기고 나다니기 일쑤였습니다. 일터에서 아이를 보며 일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여자는 저의 상황은 그 어떤것도 고려하지 않으며 언제나 본인밖에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여자는 행복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늘 어두운 표정과 말투로 제게 다가왔고 그런 여자의 모습이 섬뜩거릴때도 있었습니다.
여자는 갑자기 버지니아를 떠나 롱아일랜드로 오겠다며 집을 사자해서 또 집을 샀고 수련원과 함께 쓴다기에 그러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기대는 훌러싱과 롱아일랜드가 멀지 않으니 이젠 좀 아내 있는 남자로 살려나 기대를 했지만 그건 제 착각이었을 뿐 여자는 명절때 조차 아이만 내려놓고는 수련원 봉사를 한다며 집을 멀리했습니다. 그때마다 말없이 상을 차리시는 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느껴지는 죄송함은 이루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롱아일랜드로 온 후로 아이는 주말마다 후러싱 집에서 머물렀고 종종 제가 일하는 곳에 나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를 본 손님들은 아들이냐 물었고 하나같이 아빠를 안 닮아서 잘생겼네! 아빠 얼굴이 하나도 없네! 엄마 닮았나? 였습니다. 아빠를 닮지 않은 아들,,, 그 말이 섭섭하면서도 서서히 내 모습이 보이겠지 하고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2년전쯤, 갑자기 여자는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며 제가 바람이 났다면서 시어머니와 아이가 있는 앞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며 화분들을 깨고 위자료 주는게 아까워 이혼도 안해주는거라고 큰소리를 치며 미친듯이 달겨들더니 집을 나가버렸고 그날 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골프채를 휘드르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니다 싶어 그때부터 정식으로 제 집에 들어오지 말라 경고하며 아이만 주말에 놓고 가는 것으로 말을 마치고 저도 이혼을 신중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없던 일을 있던 사건으로 만들면서 우기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그런일 없다며 우기는 여자의 억지에 질리기 시작했고 저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여자와 주고받은 문자를 저장하기 시작했습니다.